운전경력 이십삼 년이지만 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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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 부르기엔 너무 일방적이다. 음치 박치 몸치 수치 길치 기계치. 평생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도움은커녕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하게 만드는 미운 녀석들. 음치 박치 몸치는 단짝이다. 지들끼리 찰떡같이 붙어 다니며 나를 괴롭히는 재미로 산다. 음주가무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의 후예답게 어느 자리에서나 당당하고 싶은 바람과 달리 나는 노래방 구석에서 한없이 위축된다. 일 년에 한두 번 찾던 노래방에서 제목이 적힌 책을 밤샘 시험공부 하는 것처럼 들여다보며 눈치껏 시간을 때웠다. 그나마 요즘은 통 갈 일이 없으니 다행이다.     

음치 박치 몸치3종 세트가 내 삶을 좀 더 윤기 나게 만들지 못하도록 훼방 놓은, 다소 귀여운 장난꾸러기였다면 수치의 힘은 자못 위대하다. 밑바닥 성적으로 대학을 결정짓게 만들고 내 인생을 좌지우지했던 놈이다. 지금의 내가 있도록 도와준 일등 공신이니 이제 와서 미워할 마음은 없다. 길치와 기계치는 내 내부의 적과 연합작전을 편다. 겁이란 놈과 손잡고 일상생활에 시도 때도 없이 파고들어 사사건건 괴롭히는 악질 중의 악질이다.

      

삼십 대 중반 운전면허를 땄다. 아버지는 대학 때 운전면허를 따려던 내게 성공해서 운전기사 두고 살라며 만류하셨다.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은 운전기사는 근무조건이 까다로웠다. 내가 아니라 본인의 여건이 허락할 때만 고용이 가능했다. 출퇴근은 힘들었고, 아이를 데리고 다닐 곳이 많아졌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여름방학 동안 운전학원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면허를 땄다. 도로 연수를 해 주던 기사님은 혀를 끌끌 차며 “그리 겁이 많아서 운전하고 다니겠소.”라고 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면허증을 받자마자 소형차를 구입했다. 네비가 없던 시절이라 남편과 몇 번이고 출근길을 오가며 연습했다. 차를 몰고 처음 출근한 날. 하루종일 창밖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날숨에는 차를 두고 버스 타고 갈까, 들숨에는 퇴근 시간 이후에 갈까. 별별 생각을 하면서 보냈다. 그 뒤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방향감각이 둔하다고 말하기엔 정도가 심하다. (너무 모자라 보일까 봐 그것까진 얘기할 수 없다)혼자 볼일이 있어 낯선 길(그래봤자 시내)을 갈라치면 남편에게 한숨 섞인 설명을 몇 번이고 들어야 했다. 마음속으론 머리 위로 주먹이 몇 번 왔다 갔다 했을지 모른다. 직장 일이든 살림이든 중간축에는 드는 편이다. 길치에 기계치 모드를 동시에 장착하면 금세 도로 위의 한심한 인간으로 바뀌니 나란 인간은 참.

    

운전을 시작한 지 이십삼 년. 퇴직한 후 거의 운전대를 잡지 않은 삼 년을 뺀다 해도 이십 년을 차를 몰고 출퇴근했다. 하지만 일편단심 초보다. 마음뿐만 아니라 실력또한그렇다. 젊었을 땐 그래도 아들 태우고 백화점도 가고 뮤지컬도 보러 다녔는데. 날이 갈수록 운전에 자신감이 붙기는커녕 불안과 초조 긴장 같은 애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그렇다고 큰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기껏 장 보러 가서 코너 돌다 마트 벽과 가벼운 입맞춤을 하거나, 아파트 주차장 기둥과 백미러와의 악수 정도랄까.

내가 운전했던 마지막 차는 까만 그랜저다. 친척이 타던 2년 된 차를 구입하여 퇴직할 때까지 6년을 타고 다녔다. 남편은 같은 해 퇴직한 후 그가 타고 다니던 19살의 산타페와 이별했다. 자연스럽게 내 차의 운전대는 그에게 넘겼다. 시골로 이사 오면서 각자 취미생활도 즐기려면 내가 몰고 다닐 작은 중고차를 사겠다고 했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모임은 줄어들고 취미생활은 쉽지 않았다. 병원을 가거나 일이 있을 땐 중년의 운전기사가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젊을 때보다 근무조건이 유연해졌다.  

퇴직 전부터 차를 바꾸고 싶어 했던 그는 오랜 고민 끝에 드디어 원하던 차를 주문했다. 며칠 전 새 차가 왔다. 10월에나 가능하다던 차는 예상보다 앞당겨 나왔다. 6인승 SUV. 반려견 두강이 차종을 선택하는 데 한몫했다. 녀석은 멀미가 워낙 심해 여행은커녕 병원도 겨우 다닌다. 아무래도 승용차보다 바닥에 케이지를 놓으면 좀 더 편안할 것 같다.     

시골살이일수록 승용차는 더 필요하다.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그마저도 손님이 없는 시간에 공백이 더 길다. 요즘 취미 활동이 늘어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며 외출이 잦다. 날이 궃으면 태워주지만 버스를 타기도 한다. 손에 익은 그랜저는 마음만 먹으면 필요할 때 운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 차는 힘들다. 가뜩이나 운전을 싫어하는 내게 덩치 큰 녀석은 위협적인 존재다. 여러모로 고민했다. 소형 중고차를 구입할까, 손에 익은 그랜저를 팔지 않고 그냥 둘까. 두구두구두구. 제 결정은요. 내 차는 없는 걸로. 한 달에 서너 번 운전하는 차의 보험료며 세금, 유지비를 생각하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돈으로 차라리 택시를 타자. 그리고 상시 대기 중인 기사님의 비위를 잘 맞추는 걸로.      

중고차 시장에 그랜저를 매물로 신청했다. 일사천리다. 인터넷으로 접수하니 감정사가 와서 요모조모 뜯어보고 경매로 내놓았다. 48시간 내에 적당한 가격이 형성되면 거래가 성사된다. 경매자가 집까지 와서 차를 가져가면 끝이다. 10년 동안 내 발이 되어 주고 전국 어디든 데려다 준 까망이.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나누지도 못하고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후다닥 떠나보냈다. 섭섭하다. 눈에는 이슬이 살짝 비치기도 했던 것 같은데 입꼬리는 올라갔다. 그토록 싫어하는 운전대를 잡을 일이 없을 것 같아서다.    

  

새 차 시승식을 하면서 그는 내게 시동 거는 법과 다양한 버튼 작동법을 설명했다. 듣는 둥 마는 둥 바깥 구경만 했다. “나, 이 차 운전 못해. 새 차 긁으면 어떡해,” 그는 아랑곳 않고 “차체가 높아서 운전하기 쉽다.”

“예전에 산타페 운전해보지 않았냐, 다를 것 없다.”라고 꼬드겼다. 어찌 됐든 차를 몰게 할 속셈이었다.

     

생각보다 그날이 빨리 왔다. 남편이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시내에서 모임이 있단다. 술 약속이 있는 날은 시간 맞춰 버스를 타고 나갔다가 올 때는 택시를 이용한다. 문제는 버스 정류장까지다.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을 걸어 나가야 한다. 짧은 거리지만 더운 날씨에 습도마저 높아 금방 땀이 날 건 뻔하다. 어떡할 거냐고 묻는 그의 입은 그것도 못한다는 말에 기가 차서 웃고 있지만 번뜩이는 눈빛에는 ‘보복이 두렵지 않냐’라는 강한 협박을 담고 있다. 30분 남았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아, 다시는 운전대 잡고 싶지 않은데. 코 꿰고 싶지 않은데.

이를 어쩐담……

대문사진: 다음 카페(호숫가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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